일본 사무라이 전설은 허구…실체는 배신 일삼는 삼류 칼잡이

2017. 6. 22. 13:53Etcs/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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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일본 사무라이 전설은 허구…실체는 배신 일삼는 삼류 칼잡이



사무라이의 지조, 충성심은 허구이다. 

일본의 친절한 생활양식은 평민들이 사무라이(귀족)들에게 죽임당하지 않기 위한 것.

 

일본의 사무라이는 무사들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무사와 같다.

 

 

한국은 중앙집권이 잘 이루어져,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까지 영양을 미치며 정치를 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이라고 하기 전까진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각 지방의 수령들이 각자의 토지와 농민, 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독자적인 지방 고을장이 = 다이묘 라는 것이고

이 성읍의 무사가 = 사무라이 이다.

 

조선은 중앙집권이 이루어지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가 운영이 되었고

말단 지방까지 관리관이 파견되어 문에 의한 통치를 했다.

 

반면 일본은 분열된 상태로, 나라가 지속되었고

수시로 전쟁일 발생하는 사회였다.

 

일본 백성들은 항상 두려움과 불안감에 살았고

이렇게 전쟁이 빈번한 사회의 경우, 칼잡이들이 실권자가 되며 법과 질서가 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 철저한 원초적인 약육강식 시대였으며,

사무라이는 일본백성들을 아무런 이유없이도 칼로 죽일 수 있었다.

다이묘(지방군주)도 마찬가지로 사무라이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면 사무라이들은

할복을 하며 충성심을 표시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가족과 토지가 유지되기 때문)

 

 

그런데 중요한건 여기서 사무라이들이 한 군주에게 충성만 한 것이 아니다.

 

만약 주군이 힘이 약해지면 더 강한 주군을 섬기기도 하였고

전쟁에서 승산이 없으면 백기투항을 하기도 한다.

 

지조있는 모습, 올 곧은 모습은 사실 포장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본은 손자병볍을 중시한다. 적을알고 나를알면 승리한다라는 내용이며,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이다.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기습에 의한 것이었고

미국의 진주만 습격도,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이었다.

 

자신이 승산이 있으면 기습을 하며 배팅하는 게 일본의 전쟁방식이라 보면된다.

친절함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기회를 엿보는 형태.

 

 

 

또한 일본인들은 평소 친절하고 부드러운 인품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에 맹목적으로 복종을 하는 습성이 있으며 세뇌와 선동도 잘 된다.

 

2차세계대전시기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며 지진을 사주했다는 유언비어에 모두 선동되어 수많은 조선인들을 이유 없이 도륙했다.

 

자살특공대(가미가제 등)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 기류에 반기를 들지 못하며, 이지메(왕따)도 일본이 원조이다.

 

지배적인 사회기류에 어긋나는 행실을 하면 모난 돌이 되어 바로 찍히는 것이다.

 

아베가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계속 군사를 가지려는 것도 이런 일본의 국민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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